철도이야기

[특별기고] KTX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녹색열매 2010. 4. 2. 10:01

섹션 오피니언 > 등록일 2008-04-12
작성자 홍보실 (admin)
[특별기고] KTX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김현주 광운대사회과학대학장/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고속철도 개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년이 흘렀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직 외에 학회와 세미나, 특강이 종종 있어서 지방갈 때 나는 KTX를 자주 이용한다. 자가운전하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려니와 고속도로 통행료며 기름값을 내고 나면 남는 장사가 아니다. 비행기도 있으나 일단 비싸고 게다가 날이라도 궂으면 정시 도착을 장담하기 어렵다. 요즘은 고속버스도 좋아졌으나 도로체증이 문제다. 그래서 십중팔구 결론은 고유가 시(時)테크 시대의 고효율 교통수단 KTX다. 전문가에게 운전을 맡기고 나는 정말로 모처럼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렸던 책을 읽어도 좋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 머리를 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정보와 사람과 물류가 물흐르듯이 흘러야 한다. 이른바 3통(通)의 개념이다. 정보를 만나게 하는 것이 통신이라면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은 교통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인 KTX는 커뮤니케이션이고 관계다. 열차가 느리던 시절에는 관계도 느렸다. 고향은 떠나고 나면 그저 추억속에만 아련히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KTX 덕분에 고향은 불과 한 걸음 밖에 있다. 여태까지는 알면서도 그냥 넘길 수 밖에 없었던 고향 부모님의 생신과 고향 친구 친척들의 온갖 부름까지 챙길 수 있어서 좋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보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있을까? 전화도 있고 이메일도 있지만 대화는 여전히 소중하다. 사업 파트너와 전화로 얘기하다가 막히면 단숨에 KTX로 달려가 만날 수 있어 좋다. 찾아간 정성에, 얼굴을 마주한 정감어린 대화에 막혔던 응어리가 술술 풀려 나간다. 고향 부모님의 목소리가 기운 없어 들릴 때는 당장 달려가 위로해 드려도 좋다. 이동시간을 줄인 만큼 현지에서 부모친지와 친구, 사업 파트너와 더 긴 시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KTX는 교통수단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KTX가 시속 300Km로 달린 지 4년이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총 이용객이 1억 3천5백만명이고 오는 8월이면 1억 5천만명을 돌파한다고 한다. 하루 이용객도 7만2천명에서 10만2천명으로 늘었다. 1년이면 거의 우리나라 인구 만큼의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KTX의 4년은 간단치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느덧 의젓한 네 살이다. 개통초기에는 연착도 잦고 고장도 잦았던 KTX가 요즘엔 좀처럼 뉴스에 오르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아무 탈없이 잘 다니고 있으니 뉴스거리가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사실 수백톤 육중한 쇳덩어리가 시속 300Km를 낸다니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인류가 바퀴를 발명하는데 수만년이 걸렸고 그 바퀴에 동력을 얹는데 또다시 5천년이 걸려서 철도가 인류역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초기 시속 10Km 남짓의 철도가 시속 수백Km를 달성하기까지는 1세기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인철도 개통에서 KTX 개통까지 105년 걸린 것을 봐도 그렇다.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그만큼 강렬했음을 말한다. 공간극복을 향한 인간의 의지는 결국 첨단과학기술을 만나 KTX를 낳은 것이다.

이제 KTX가 누비기에 한반도는 좁다. 개성을 지나 평양까지, 원산을 지나 청진까지, 그리고 그 너머 만주벌판과 유라시아 대륙까지 누빌 날을 꿈꾼다.

* 이 기고문은 7일자 헤럴드경제 25면에 게제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