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기차길들

[스크랩] 송대관 차표 한장

녹색열매 2010. 2. 22. 17:35


출처 : 가수 조아라 그래 그래 사랑꽃 공식 팬카페
글쓴이 : 가수 조아라 그래 그래 사랑꽃 공식 팬카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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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관 차표 한장

<차표 한 장> ♬ 인생을 열차에 빗댄 가요
행복+ 2월호 '철길 따라 노래 따라'


  
◆ ◆ ◆ ◆ ◆ 철길 따라 노래 따라 / 인생을 열차에 빗댄 가요 <차표 한 장> ◆ ◆ ◆ ◆ ◆

◆ 삶과 사랑, 만남과 헤어짐 녹아 있어 무임승차로 상경한 송대관 히트곡 눈길 ◆

☆ ☆ ☆ ☆ ☆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사랑했지만 갈 길이 달랐다
이별의 시간표대로 떠나야 했다
달리는 차창에 비가 내리네 그리움이 가슴을 적시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추억이 나를 울리네☆ ☆ ☆ ☆


☆ 달리는 차창에 비가 내리네 그리움이 가슴을 때리네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추억이 나를 울리네

조동산 작사, 원희명 작곡, 송대관 노래의 <차표 한 장>은 우리의 인생을 달리는 기차에 빗대어 만들어진 가요다. 4분의 4박자 비트 슬로우 고고(트로트)로 멜로디는 경쾌하지만 노랫말을 잘 음미해보면 깊은 뜻이 담겨 있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삶과 사랑, 만남과 헤어짐이 오롯이 녹아 있다. 한편의 서정시를 읊조리는 느낌이랄까.
모두들 ‘인생 열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서고 내리는 곳이 다르고 삶도 제각각이다. 사람이 나서 살다 세상을 떠나야하는 게 어쩌면 예정된 시간표대로 운행되는 기차와 같다는 것이다. 표를 사서 ‘인생이란 기차’에 올랐지만 언젠가는 죽음이란 종착역에 내려야 한다는 우리들 얘기를 그린 노래다. ‘상행선을 탄 너’는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젊은이를, ‘하행선을 탄 나’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를 말한다. 열차와 인생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막걸리처럼 구수한 목소리의 송대관이 불러 더욱 맛깔스럽다.

☆ ☆ KBS ‘신인가수탄생’ 장원☆ ☆

이 노래엔 가수 송대관(64)의 힘들었던 삶과 풋풋한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가 얽혀 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전주KBS 전속가수로 활약했던 소리꾼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교(전주 영생고등학교) 졸업 뒤 1965년 여름 기차를 무임승차해 무작정 상경했다. 19살 때였다. 돈이 없어 기차표를 끊지 못해 몸을 피해가며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열차 안에서도 검표하는 여객전무를 잘 따돌렸다. 그는 서울에 오긴 했으나 살기가 막막했다. 잠자리가 없어 공사장에서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래로 성공 하겠다’며 각오를 다진 것이다.
그 무렵 마침 KBS ‘신인가수탄생’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그는 거기서 장원을 해 노래실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의 가수 김상희 씨 남편인 당시 유훈근 PD가 발탁해줬다. 1967년 오아시스레코드사에 들어가게 되는 행운을 안은 것이다. 신인가수로 들어가 노래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그 때 일주일 먼저 들어온 나훈아가 있었다.
송대관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노래로 승부를 걸었다. 상경 2년 만인 1967년 데뷔곡 <인정 많은 아저씨>를 내놓으며 가요계에 신고했다. 그는 <해뜰 날>과 <차표 한 장> 등으로 유명해진 뒤 서울역으로 찾아가 고향서 서울로 올 때 공짜로 타고 온 기차요금의 몇 배를 돌려줬다.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었던 ‘무임승차에 대한 빚’을 정리한 것이다.
송대관은 어릴 적부터 노래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콩쿠르에 나가 1등을 도맡아해 ‘돼지 한 마리씩’을 끌고 왔을 정도다. 고교 때부터는 당연히 크면 가수가 되리라 맘먹었다. 그는 자신이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건 자연스럽게 “예정된 시간표대로 간 것”이라고 말한다. <차료 한 장>이 어쩌면 자기 자신을 노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1946년 6월 2일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생인 그는 태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조부(고 송영근 선생)가 1919년 태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여 독립유공자로 추서됐고 손자인 송대관은 국가보훈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 ☆ 고향 정읍에 노래비…가수협회장 활동☆ ☆

그는 △2005년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상 △2005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4년 SBS가요대상 등을 받았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해뜰 날> <명동 나그네> <차표 한 장> <정 때문에> <혼자랍니다> <사랑해서 미안해> 등 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특히 1976년 최대의 인기가수와 히트곡은 송대관의 <해뜰 날>이었다. 그해 말 각 방송사 가수왕 시상식을 휩쓸며 전성기를 누렸다. 시대흐름에 맞는 빠른 템포도 좋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준 노랫말이 대중의 맘을 사로잡아 빅히트했다. 1975년 가을 어느 날 새벽 4시에 만들어졌다. ‘꿈을 안고’ 기차를 무임승차해 무작정 상경한 자신의 어려운 현실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욕망을 그대로 옮겨 공감을 산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 정읍시 내장저수지 부근에 그의 대표곡 <해뜰 날> 노래비가 세워졌다. ‘해’와 내장산을 상징하는 ‘산’, 단풍을 형상화한 노래비는 둘레 10m, 높이 5m 크기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송대관은 2007년 전북 정읍시로부터 애향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를 열어 화제가 됐다. KBS 1TV ‘반갑습니다 선배님’ 프로그램에서였다. 방송녹화를 위해 40여년 만에 모교인 전주영생고등학교를 찾은 그는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해뜰 날> 노래가 히트해서 번 돈으로 살렸다”고 털어놨다. 마침 모교엔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후배가 있었다. 이에 맘을 떼지 못한 그는 후배의 집을 깜짝 방문해 ‘감동의 공연’을 펼쳤다.
송대관은 노래 외에도 바쁜 몸이다. 2008년 10월 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가수의 날 기념식’ 때 남진에 이어 (사)대한가수협회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그해 8월 열린 가수협회 임시총회 협회장선거에 단독출마, 만장일치로 뽑혔다. 지난해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트로트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또 지난해 10월 말엔 서울 강남구의 노인복지분야 홍보대사로, 11월 하순엔 정읍시 관광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지난해 10월 31일 정읍 내장산 문화광장에서 ‘송대관 가요제’까지 열렸다. 이 가요제는 살아 있는 가수이름을 딴 가요제론 국내 최초다.
노랫말을 쓴 조동산 씨는 시와 음악을 합성시키는 마술사로 유명한 음악인이자 문인이다.
한혜진의 <너는 내 남자>, 문희옥의 <성은 김이요>, 이태호의 <미스고>, 남진의 <내 영혼의 희로인> 등을 작사한 최고의 시인작사가다.

☆ ☆ 작곡가 원희명 씨는 잘 나갔던 편곡자☆ ☆

<차표 한 장> 작곡가 원희명 씨도 이름 있는 음악인이다. 일반인들은 <미스 고>(이태호 노래), <몇 미터 앞에 두고>(김상배 노래)를 작곡한 트로트작곡가로 떠올리지만 훨씬 전부터 편곡자로 유명했다.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 주>, 바니걸즈의 <그 사람 데려다 주오> 등을 편곡한 바 있다. 1970년도 중반에 가장 잘 나갔던 편곡자인 동시에 이은하가 부른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의 팝 스타일 작곡가다.
그가 어느 날 이 땅에서 홀연히 사라지자 갖은 억측들이 나돌았다. ‘미국에 가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느니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느니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연스럽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 관계 있었던 J음반사 문예부에 다니는 아가씨(미스 방)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글,
2010-02-10 11:40:16 홍보실(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