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재명사님 추모

앙드레김 별세 패션계의 큰별지다 연보 유산300억? 브랜드파워가치는?

녹색열매 2010. 8. 13. 20:52

 


앙드레 김 '75세 인생 패션쇼' 막내리다

세계일보 | 입력 2010.08.12 22:32 | 수정 2010.08.13 09:34

故 앙드레김 빈소, 스타들의 조문행렬 이어져[스팟TV]

영상을 올린 날짜
2010.08.13 22:04

[스팟TV] 13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 마련된 디자이너 故 앙드레김 빈소.

'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모아온 원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오후 7시25분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향년 75세.

패션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2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자리에서 본명이 알려지며 곤혹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흰 옷만 입는 패션과 외국어를 섞은 어눌한 말투 등으로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앙드레 김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특실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1982년 입양한 아들 중도씨(30)가 있다.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 김 별세
피라미드·앙코르와트서 세계 첫 패션쇼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곤욕 치르기도
평생 독신… 아들 입양해 쌍둥이 손자 얻어


12일 별세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한국 패션계의 '얼굴'이자 대한민국 누구나 다 아는 친숙한 '앙 선생님'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앙드레 김은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려서부터 의상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16세이던 1951년 부산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직수입 영화를 보며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품게 됐다고 한다.

부산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한 앙드레 김은 서울로 올라와 디자이너 최경자의 양장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1961년 최경자가 국제복장학원을 설립하자 1기생으로 입학해 본격적인 디자이너 수업을 받았다. 국제복장학원 수료 후 그는 1962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화려하게 데뷔했고, 같은 해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라는 이름의 작은 의상실을 열었다. 의상실에 붙인 '앙드레'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외국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붙여준 것이다.

1966년 파리 컬렉션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등 해외로 진출한 그는 세계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발돋움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집트 피라미드 앞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많은 기록도 남겼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앙드레 김은 1982년 이탈리아 정부 문화공로훈장,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패션디자인부문으로 제7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1999년 그의 패션쇼가 열렸던 11월6일을 '앙드레 김의 날'로 선포했다.





◇1950년대 말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린 한 웨딩패션쇼에 앙드레 김이 정장을 입고 출연한 모습이 이채롭다.

앙드레 김은 여성의 지성미와 우아함을 강조하는 패션 세계를 추구했다. 흔히 '일곱 겹 드레스'로 대변되는 그의 패션 키워드는 '꿈과 환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담겨져야 한다"고 했던 그의 패션 철학은 무엇보다 패션쇼에서 잘 드러난다. '패션쇼를 종합예술의 스테이지'라고 말해온 그는 다른 패션디자이너들이 패션쇼에서 다음 시즌에 유행할 의상을 선보이는 것과는 달리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패션철학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을 패션쇼 무대에 세워 대중이 패션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뛰어난 디자인 능력뿐 아니라 앙드레 김은 독특한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촌스런 본명(김봉남)과 영어를 섞어 쓰는 특이한 말투, 흰옷을 고집하는 독특한 패션 스타일과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하고 이마 윗부분까지 까맣게 칠한 헤어스타일, 진한 메이크업 등은 앙드레 김의 '상징'이다.

1999년 불거진 '옷 로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말년에는 의상 외에도 보석·속옷·안경·가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역량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1982년 당시 18개월이던 아들 중도씨를 입양했으며 2005년 쌍둥이 손자를 얻어 할아버지가 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천안 공원묘원.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앙드레 김 연보

1935

경기도 고양 출생

1962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고 데뷔

1966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패션쇼

1982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

1988

서울올림픽 개최기념 패션쇼

1997

화관문화훈장

2000

프랑스 정부 예술 문학훈장

2003

유니세프 친선대사

2005

한국 복식학회 최고 디자이너상

2006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패션쇼

2007

자랑스런한국인 대상

2008

보관문화훈장

2010. 7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

2010. 8. 12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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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TV] '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모아온 원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오후 7시25분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패션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2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자리에서 본명이 알려지며 곤혹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흰 옷만 입는 패션과 외국어를 섞은 어눌한 말투 등으로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한편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많은 누리꾼이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란다" "좋은 일도 많이 하신 분인데 안타깝다"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대표 디자이너를 잃게 돼 마음이 아프다" 등의 댓글을 달며 눈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앙드레 김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특실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1982년 입양한 아들 중도씨(30)가 있다.
이투데이=한옥주 기자)
▲ 사진=연합뉴스

고(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 패션디자이너의 마지막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앙드레 김 디자이너 명의의 부동산 재산만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그의 재산을 누가 상속받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앙드레김의 재산은 그가 생전에 작성해둔 유언장 내용에 따라 아들 김중도(30)씨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13일 본지가 고인 명의의 부동산 내역을 취재한 결과 앙드레 김 디자이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땅 2필지(540㎡)와 건물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생전 거주했던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 채도 갖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고인의 의상실이 들어선 신사동 부지 2필지 평가 가치는 현재 시세가 3.3㎡당 1억5000만원으로 25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부지에 들어선 지상 5층과 지하 2층의 건물도 고인의 명의인 것을 감안하면 신사동 의상실 건물과 토지의 가격은 3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앙드레 김 디자이너는 지난 2001년 신사동 부지를 담보로 은행권으로부터 23억원을 대출 받아 현재의 의상실을 신축했다. 이 대출금은 지난 2004년 은행에 완납하면서 청산됐다. 앙드레 김 디자이너의 또 다른 부동산은 강남 압구정동의 H아파트다.

H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214㎡(64.7평) 기준 28억~31억원선이다. 앙드레 김 디자이너가 소유한 아파트는 198㎡형이다. 13일 현재 앙드레 김 디자이너 소유의 아파트에는 은행으로부터 12억원 대출금 근저당권이 등기돼 있다.

한편 디자이너 앙드레김은 1982년 입양한 아들 김중도씨를 슬하에 두고 있다


걸어다니는 패션기업 '앙드레김' 가치는 얼마

머니투데이 | 이명진 | 입력 2010.08.13 16:29 | 수정 2010.08.13 17:29

 



[머니투데이 이명진,박희진기자][아파트·도자기·란제리 등서 막강 '브랜드 파워'… 연 매출 최소 1000억원]





↑앙드레 김은 한국도자기와 손잡고 2008년 초에 자신의이름을 내건 도자기를 처음 선보였다. ⓒ한국도자기

'아르마니TV', '프라다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손잡고 내놓은 프리미엄 제품들이다. 공산품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는 유명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협업)은 아트 마케팅과 함께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올랐다.

한국 디자이너 중에는 그 자체로 '예술'로 통하는 아이콘이 바로 고(故) 앙드레 김이다. 앙드레 김은 한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걸어 다니는 패션 주식회사'다. 의상실 뿐 만 아니라 골프 웨어, 아동복, 이너웨어, 보석, 홈패션, 도자기, 자전거, 벽지, 양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앙드레 김=예술'이라는 등식을 만들며 브랜드 가치를 확장시켜왔다.

특허청에 등록된 앙드레 김 상표만도 17건. 이 가운데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시중에 나와 있는 상품이 아파트와 냉장고, 에어컨, 신용카드, 자전거 등 10가지가 넘는다.'앙드레 김' 브랜드의 연간 매출을 합치면 최소 1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그는 옷 뿐만아니라 우리 생활공간, 물품 속에 그의 디자인을 입혀왔다. 서울 목동 트라팰리스 아파트는 앙드레 김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아 '앙드레 김 아파트'로 불리고 삼성전자와 제휴한 앙드레 김 냉장고, 삼천리자전거가 만든 '앙드레 김 자전거'도 있다.

'앙드레 김'이란 이름을 단 브랜드의 연간 매출을 합치면 최소 1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보통 중견기업 이상의 브랜드 가치가 있다는 분석이다.

◇'앙드레 김' 브랜드, '예술'을 입다

=앙드레 김은 한국도자기와 손잡고2008년 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도자기를 처음 선보였다. 앙드레 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올해 3월에 선보인 웨딩컬렉션 '패럿'이 한국도자기와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한국도자기 고위 관계자는 "앙드레 김 선생님은 경제적인 이익보다는 오로지 브랜드 가치 자체에 열중했다"며 "진정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한국도자기의 앙드레 김 제품은 2008년 초 첫 선을 보인 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 매출은 45억~50억 원 선. 한국도자기 측은 "변함없이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고인의 작품세계에 누가 되지 않게 디자인 정신을 잇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란제리 브랜드 '앙드레김 엔카르타'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고품격 이미지에다 홈쇼핑과 온라인몰을 유통채널로 삼아 이른바 '매스티지 마케팅'의 좋은 성공사례로 꼽힌다. 출시 당시 방송 시간당 4억∼5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현재도 1회 방송마다 3억∼4억원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 3월 홈쇼핑과 온라인몰에 이어 대구 동성로에 가두점도 열었다. '앙드레김 란제리'는 이달 가두점 3곳을 추가로 열기로 했고 이중 한 곳은 앙드레 김의 사망 당일 날 열어 관계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앙드레김과 라이선스 계약 중인 아인스 M & M 관계자는 "병세 호전을 기대했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2001년부터 11년간 작업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앙드레 김, 브랜드 가치는?

=앙드레 김은 2001년 앙드레김 코스메틱 론칭 이후, 2002년 앙드레김 속옷 브랜드 엔카르타, 2003년 앙드레김 키즈, 2004년 앙드레김 골프웨어, 2008년 앙드레김 도자기, 2009년 앙드레김 주얼리 론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앙드레 김 주얼리 매출은 연 50억원, 앙드레 김 키즈 연 매출은 70억~80억원, 앙드레 김 골프웨어 연 매출 약 300억원 등 업계에서는 앙드레 김 브랜드로 연간 1000억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숱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있지만 앙드레 김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하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다"며 "앙드레 김처럼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가진 인물도 드물다"고 평가했다.

삼성경제연구원 이동훈 연구원은 "고(故) 앙드레 김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가치와 사회적인 네트워크 가치가 상당하다"며 "고(故) 앙드레 김의 브랜드는 보통의 중견기업 이상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앙드레 브랜드, 후계는

=앙드레 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전 국민이 애통해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 브랜드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앙드레 김' 브랜드의 향방에 대한 관심도 높다.

올해로 48년째 '패션 인생'을 살아온 앙드레 김은 한국 패션계의 산증인으로 통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다 할 '후계' 구도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앙드레 김 측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 후계자 등 준비를 해두지 않은 상태"라며 "고인의 최측근인 임세우 실장과 아들, 디자이너 출신인 며느리가 같이 아뜰리에 맡아서 경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앙드레 김은 올해 3월에도 중국 베이징에서 패션쇼를 열만큼 열정적으로 일을 해왔지만 올해로 75세라는 고령의 나이 때문에 후계 문제에 외부의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생전에 앙드레 김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상실 일은 물론 나머지 사업도 본인이 직접 진두지휘해할 정도로 일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다.

이 때문에 앙드레 김의 공백이 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앙드레 김 브랜드는 거의 '1인 체제'로 운영돼 와 그의 공백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세계가 알아주는 브랜드인데 좋은 안을 마련해 잘 지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앙드레 김 각 분야 사업현황

▲2001년 앙드레김 코스메틱 론칭

▲2002년 앙드레김 엔카르타 론칭

▲2003년 앙드레김 키즈 론칭

▲2004년 앙드레김 골프웨어 론칭

▲2008년 앙드레김 도자기 론칭

▲2009년 앙드레김 주얼리 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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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명진,박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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