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 사망까지 남한에 사실혼 아내와 아들과 재산를 남겼다
2010.10.09 17:39 | 화제의인물들의애도함 | 녹색열매
[데일리안 신동규 기자]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전 비서(87)가 10일 별세함에 따라 국내에 남은 유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 측은 "평소 좌욕을 좋아하는 황 전 비서가 욕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자 보안요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죽어 있었다고 한다"며 "정황으로 봐서는 심장마비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한 사망 원인을 위해 면밀하게 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워낙 세간의 관심이 많고 중요한 사안이라 부검을 실시하는 것"이라며 "정확한 부검 결과가 빠르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결과가 나오는 데로 브리핑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故 황정엽의 빈소는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4일로 잡혀있다. 현재까지 외부로 드러난 고인의 가족으로는 수양딸 김숙향 씨(68·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가 유일하다. 그러나 황씨에게는 사실혼 관계인 부인(49)과 아들(11)도 있다고 <뉴시스>가 11일 보도했다.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1997년 입국 후 국가정보원 측이 추천한 비서 후보들 가운데 황씨가 직접 선택한 여성이 현 부인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11)은 북의 위협을 우려,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가 현지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누구의 아들인지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아버지를 빼닮았다. 하지만 황씨의 호적에는 이 부인과 아들이 올라있지 않다. 아들도 ‘황씨’가 아니라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부인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남편 황씨와 아들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또한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황씨의 사망 장소인 서울 논현동 안전가옥은 국가재산이 아니라 황씨 개인 소유라는 설도 있다. 황씨는 또 부인에게 이 안가 인근의 5층짜리 빌딩을 양도했고, 부인은 언니 명의로 건물 1층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황장엽, 국가안보 확립·북한 민주화에 헌신...국민훈장 추서” 2010-10-12 15:08
행정안전부가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을 찾아 훈장을 직접 전달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가보훈처는 13일 오전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를 심의한 결과, 국립대전현충원 에 안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외국인 포함)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은 안장할 수 있도록 했다. [노컷뉴스] 2010년 10월 10일(일) 오후 01:54
[CBS정치부 김주명 기자]
1997년 2월 12일 베이징에서 남북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베이징의 주중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북한 노동당 최고위층인 황장엽 비서가 망명을 신청한 것이다. 황씨는 주체사상에 관한 강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뒤 중국을 거쳐 귀국하는 경로에 자신의 최측근인 김덕홍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북한의 체제에 의분을 느껴 변혁을 도모하기 위해 망명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국행을 막아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로 중국측과 치열한 막후협상을 벌였다. 만약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황장엽을 중국에서 살도록 하고, 이것조차 안 되면 사살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우리 정부도 황씨의 망명 성사를 위해 중국을 상대로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외교접촉을 계속했다.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장관특보로 급파됐다. 언론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중국인 복장을 하고 승용차도 바꿔 타며 중국 외교부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난처해진 중국 정부는 황씨의 망명 의사가 확실한 것을 확인하고 황씨를 제3국인 필리핀으로 내보냈다. 중국은 황씨의 망명이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해 황씨를 제3국에서 한달간 체류하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이었던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필리핀 라모스 대통령을 만나 황 비서의 체류를 요청해 한달 뒤 황씨의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 실각 위기 속 한국행 선택 황장엽 비서가 한국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황씨는 주체사상과 관련해 김정일과 심각한 갈등을 겪으면서 숙청의 위기가 다가오자 한국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 중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주체사상에 대한 강연회나 세미나에 참석하던 황 비서는 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체사상 세미나에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상이 아라) 인간을 근본으로 한 인본사상이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황 비서는 이후 모스크바종합대학 연설에 대해 "나는 주체철학이 인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김정일에게도 여러 차례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내 얘기의 핵심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이 평양에 보고되면서 위험을 감지한 황 비서는 베이징에 나와 있던 김덕홍씨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1997년 1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주체사상 세미나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베이징에서 전격적으로 망명을 선택하게 됐다. ◈ 망명 이후 반북활동 황 위원장은 망명 이후 대표적인 반북인사로 활동해 왔다. 이 때문에 북한은 여러 차례 황씨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특히 김정일 체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3대 세습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해왔다. 그는 올 초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에 대해 "그까짓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일 체제가 김일성 시대보다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강하다면서, 북한이 자신을 반역자라고 하지만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죽게 하는 김정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여러차례 황씨를 암살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과 국가정보원은 지난 4월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한 김모(36)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 전 비서는 그러나 결국 북한 노동당 창건일인 10일 오전 9시30분 서울 강남구 논현1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jmkim@cbs.co.kr [관련기사] ● 노동당 창건 65주년일, 남한에서 별세한 황장엽씨 ● 황장엽씨 심장마비로 사망‥"외부 테러 가능성 없어"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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