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이야기

왜 협궤철도를 만들었을까

녹색열매 2010. 4. 2. 11:09

섹션 레일로이어지는행복+ > 등록일 2010-04-01
작성자 홍보실 (admin)
왜 협궤철도를 만들었을까?
행복+ 4월호 발간


협궤철도 하면 대개는 옛날의 수여선과 수인선철도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협궤철도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철도의 표준궤간(1,435㎜ : 4ft8.5inch : 4尺8寸)은 미국의 클락코던의 글에 의하면 로마시대 병거(兵車)의 수레바퀴 넓이로 당시 말 두 마리의 엉덩이 넓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수레바퀴가 오랜 세월 길을 달리면서 바퀴자국 홈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아 이 홈의 넓이와 달리할 경우 이미 홈이 파인 길을 달릴 수 없어 수레바퀴의 넓이가 자연히 통일되었으며 이 길에 나무를 깔다가 철을 깔아 철길이 되었고 1886년 스위스의 Berne국제회의에서 1,435㎜를 국제표준 철도궤간으로 결정함에 따라 이 보다 넓은 궤간은 광궤(廣軌)철도, 좁은 궤간은 협궤철도(또는 경편철도 輕便鐵道)로 분류한다.

물론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서 광궤철도의 경우 칠레는 1,676㎜, 인도·스페인·포르투갈·아르헨티나는 1,668㎜, 러시아·핀란드는 1,524㎜를 사용하고, 협궤철도의 경우 일본·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뉴질랜드·오스트렐리아는 1,067㎜, 베트남·태국·말레지아·미얀마·인도의 일부·동아프리카·아르헨티나·케냐는 1,000㎜를 사용하며 표준궤간은 한국·일본 신칸센·중국·유럽각국·캐나다·미국·오스트렐리아의 일부 등이다. 우리나라 수인 ․ 수여선의 경우는 762㎜의 궤간이었으며 610㎜의 궤간을 사용하는 협궤철도도 있다.

세계철도의 궤간이 모두 같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필자는 러시아 대륙횡단열차 여행 중 옆을 스쳐가는 화물열차 하중이 우리의 50Ton보다 큰 70~75Ton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 이렇게 광활한 지역에서 많은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궤간과 보다 큰 차량이 필요 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형과 형편에 따라 궤간 넓이를 달리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겠다고 깨달은 적이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표준궤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1896년 7월15일 고종임금은 조선의 모든 철도는 원할한 물자수송을 위하여 철도궤간을 4尺8寸(1,435㎜)로 한다는 광무 칙령31호 ‘국내철도건설규칙’을 공포하여 한국철도부설권을 따내려 극심한 경쟁을 하는 러시아의 광궤도 아니고 일본의 협궤도 아닌 표준궤간을 선택하여 이들을 제제하려 했다한다. 후에 일본정부가 경부, 경의선을 부설 할 때 일본과의 철도 접속을 위하여 일본과 같은 1,067㎜를 주장했으나 일본 군부가 이미 부설된 경인철도와 추후 점령할 만주지방 철도와 연결을 위해서는 표준궤간(1,435㎜)으로 해야 된다고 주장하여 결정된 것이며 전호에서 본바와 같이 마산선 철도도 애당초 협궤철도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일본 군부가 표준궤간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많은 사설철도가 부설되면서 건설비나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절감되는 협궤철도가 탄생한 것이다. 경부선 부설 전 박기종의 부하철도, 1927년 1월부터 1960년까지 운행되었던 함평궤도주식회사의 함평~학교간 함평선, 1921년10월25일 개통되어 1935년12월16일 표준궤간으로 개수된 경동철도주식회사의 대구~포항간 경동선, 같은 경동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수여선과 수인선 등 많은 협궤철도가 부설되었다.
함평선의 궤간은 1,067㎜로 최초로 경유동력차를 기관차로 사용하였고, 수여선은 1930년 12월 1일 수원~여주간 개통되어 1972년 3월31일 폐선된 762㎜궤간이었으며, 수인선은 1937년 8월 6일 수원~남인천간 762㎜궤간으로 개통되어 1995년12월31일 폐선되었다.

필자는 교통부로부터 1963년 8월17일 수인선 어천역 역무원 발령을 받고 수원에서 버스편으로 부임지인 어천역까지 가다가 난생 처음 보는 작은 기차(화물열차)가 옆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광산에서 사용하는 트러리인줄 알고 근처에 광산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다가 막상 어천역에 도착하여 작은 기차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이용했고, 신호등에 전기가 연결되지 않아 저녁이면 낮에 닦고 기름을 채워둔 석유등에 불을 켜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신호등에 꽂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산시 대부도 탄도항에 있는 안산어촌민속박물관에서 옛날 소금창고에서 기차에 소금을 싣는 모형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니 옛날 초가을이면 소래포구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임시화물열차가 운행되어 밤을 새웠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안산선 고잔역에 가보면 주차장 옆에 옛 수인선의 좁다란 철길이 그 대로 놓여있다. 자로 재어보니 궤간이 정확히 762㎜다. 그런데 나무 로 만들어 놓은 객차 모형은 너무 작아 기차에 앉으면 앞사람과 무 릎이 부딪혔다는 좀 과장된 표현을 믿고 정말로 협궤선 기차가 그렇 게 작았던 것으로 오해할까 싶어진다.

철도박물관에는 협궤증기기관차(등록문화재 418호)와 객차, 협궤동차, 협궤무개화차(등록문화재 421호), 협궤유개화차(등록문화재 422호)가 전시되어있다.
인천시 남동구청은 구청광장에 전시 중이던 협궤증기기관차를 소래포구 광장으로 옮겨 전시하고 매 시간 칙칙폭폭 기적이 울리도록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소래포구에 남아있는 옛 수인선 철교를 안전상 문제로 철거를 검토 중 이라는 보도를 본적이 있다,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연간 이 철교를 걸어보는 관광객이 1,0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필자는 중국 정주에 갔다가 황하강변에서 보았던 철길생각이 난다. 황하를 가로지르는 철교가 노후되어 철거하고 새로운 전기철도 철교를 가설하면서 강변 일부 옛 철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대형 안내 판과 함께 관광객 편의를 위해 침목위에 철길 건널목처럼 보판을 깔아 많은 사람들이 철길을 걸어보며 기념촬영을 하던 모습이 너무도 멋있었고, 왜 우리는 옛것을 이렇게 보존하고 활용하지 않을까 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은 협궤철도의 역사성을 인정한 서울민속박물관은 수집가로부터 기증받은 협궤용 객차를 복원시켜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은 어린이대공원에 방치되었던 옛날 전차를 기증받아 복원 전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선사하며 이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기위한 현지조사에는 필자도 참여 했던 적이 있다. 지나간 역사는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역사의 흔적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남는 것이다. 특히 우리네 생활이 풍요로워 질수록 지난 과거의 유물은 그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아마 모두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글+ 손길신 철도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