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일본실상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녹색열매 2019. 3. 19. 19:39

낭만과사랑 | 조회 232 |추천 0 |2019.03.19. 03:07                         

애국선열들의 넋이 깃들어 있는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키를 훨씬 넘긴 빨간 벽돌의 담장이 경직되도록 위엄을 주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 근교에 오니 꼭 가봐야 할 곳이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역사체험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발길을 잡았습니다.

▲ 망루와 담장

재소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망루와 담장이

쉽게 닥아 가기가 좀 그렇지만, 우리들이 알고있는

형무소와는 다른 일제강점기와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한국 역사의

아픔과 극복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알려 시민들이 자주독립과 자유,

평화수호 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설립된 역사 박물관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입장을 하게 되면 맨 먼저 보안과 청사였던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으로 자연스레 따라 들어 갑니다.

여러채의 건물로 나뉘어 있어 건물 안은 화살표 방향으로 관람 방향을

표시하여 쉽게 관람을 할수 있도록 하였다.

▲ 유관순 열사

▲ 독립운동가 수형기록표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되새겨 보는 공간이다.

▲ 사형장 가는길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절명시에서)

역사전시관을 돌며 재잘거리는 수다보다는 그저 숙연함만이

느껴지는 역사관이였네요.

특히 사영장 가는길의 단두대 앞을 지날때는 몸마저 움츠려 들며

마음이 쨘하기도 하였습니다.

1908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워졌던 경성감옥(京城監獄)을

시초로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했던

현장으로 식민지 권력의 대중통제 시설로 이용되었으며,

독립운동이 치열해지면서 1920년대 초반 그 규모와 시설이 대규모로 확장

되었던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여 년간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수형시설로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및 사형장 등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유물 및 자료 등을 전시하여 국민들에게

역사체험 현장으로 설립 되었다.

 

지하전시관으로 내려가니 지하 고문실에서의 취조과정과

각종 고문의 실상과 실제 고문을 당한 독립운동가의 육성증언등

식민통치의 실상을 볼때는 너무나 끔찍하고 가슴이 아팠답니다.

▲ 중앙사

형무소 조직기구와 감시도구 그리고 재소자들의 하루 일과 등

전반적인 형무소 생활에 대하여 알아 볼수 있는 공간,

밥을 찍는 틀 즉 가다밥을 만드는 틀에는 동그란 나무틀이

들어 있어 등급별로 밥을 주었다고 하는군요.

▲ 12옥사

12옥사 독립운동가, 11옥사 민주화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곳으로

영화, TV에서 자주 보았던 12옥사입니다.

각종 영화 촬영지로 소개된 이곳에 들어서니 영화 스토리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네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45년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곳으로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서대문구를 중심으로 보존운동이 펼쳐져,

옥사 일부와 사형장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 체험의 현장으로 조성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일명 먹방이라 불리던 독방으로 내부는 약 0.7평이며 하루종일 빛이

들어오지않아 먹물처럼 캄하다고해서 먹방이라 불리던곳도 있다.

▲ 공작사

재소자들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형무소, 군부대, 관공서

등지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공급하던 공장,

▲ 한국 광복군 서명 태극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상설전시관과 옥사전시관을 갖추고 있으며,

상설전시관 1층은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주제로 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으며,

상설전시관 2층은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담은 3개의 민족저항실과

서대문형무소에 있던 지하고문실이 복원, 전시되고 있다.


옥사전시관에는 형무소 조직기구와 감시도구, 그리고 재소자들의 하루 일과 등

전반적인 형무소 생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중앙사가 있고,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11~12옥사, 재소자들이 군수품 제작에

동원되었던 공작사 등이 있으며, 야외전시물로는 한센병사, 사형장,

유관순 지하감옥, 망루와 담장 등이 있다.

 

 

▲ 한센병사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한센병에 걸린 수감자들을 강제로

격리 수감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붉은 담장과 망루

▲ 추모비


▲ 사형장

1923년에 지은 목조 건물로 전국에 투옥된 애국지사들이

사형당한 장소로 국가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찍기에는 조금 그러해서 멀리 밖에서 한컷 눌렀습니다.

▲ 시구문

사형장 시체를 몰래 산에 내다 버리기 위해 만든 문

▲ 격벽장

수감자들의 운동을 하는곳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도록

일자로 서서 운동하게 했다 합니다.

 

▲ 옥사터와 붉은벽돌

▲ 여옥사

여옥사 내부를 관람하면서 제일 눈에 들어오는 8호옥사입니다.

8호 옥사에는 유관순 열사가 옥살이를 한곳이라고 해요.

3.1운동 1주년이 되던 날 옥중 독립운동을 계획하여 서대문형무소 옥사

전체의 3,0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이 모두 만세시위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개소 초기 경성감옥의 수감인원은 500여 명으로 일제의 침략에

무력으로 맞섰던 의병들이 주로 수감되었고,

1910년 강제병합 이후에는 의열투쟁과 비밀 결사 요인들이 주로 수감되었으며,

1919년에는 3.1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급격히 늘어나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하여 3,000여 명에 육박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되었다고 한다. 


<서대문역사관을 훼손 변질시킨 자는 누구인가?> ​


사람마다 생김생김과 성격이 다르듯이 일하는 스타일도 제 각각이다.

깊이 생각하고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 일을 차근차근

조직적으로추진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먼저 사람들이 했던 일들을 깡그리 뒤엎어버리고 자기가 새로운 일을

꾸미느라고 설쳐대는 사람도 있다. ​

똑똑하지만 게으른 듯, 서둘지도 않고 설치지도 않으면서

일을 합리적으로 차근차근 해가며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흔히

'똑게'라고 한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의욕만 가지고 설쳐대는

멍청이가 부지런을 떨다가 일도 망치고 회사를 멍들게 하는 사람을

'멍부'라고 한다. ​

알짜 기업인 포스코를 말아먹다시피 한 정준양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멍부'다. 실력이나 경력은 아닌데 빽으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자격지심 때문에 뭔가 보여주기 위해 설쳐대기 쉽다. 그러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것이다. '멍부'때문에 망쳐지는 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나 많은가?​

개인기업이나 개인조직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그들 문제로 끝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민족정신과 우리의 중요한 역사 사실과 관계되는

일까지 멍청한 고위 공직자들이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본 사람

이라면 그곳이 설립 목적과는 달리 어떻게 변질돼 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노할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수많은 우리의

독립지사들을 잡아가두고 일제가 온갖 고문과 매질, 타살, 처형 등을

일삼으며 악행을 저질러 오던 곳으로 민족의 아픔과 원혼이

깃들어 있는 유적지다. 그래서 정부는 그곳을 1988년에 국가 사적

제224호로 지정한 바 있다.​

1987년 형무소가 의왕시로 옮겨가자 서울시 본청 간부와 서대문구청

내부에서조차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도록 하자는 주장이 고개 들기

시작했다. 당시 서대문 구청장(이정규)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피 끓는 애국정신과 원혼이 서려있는 곳을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청와대 등 요로에 진정해서 1998년 그곳을 성역화해서

독립운동의 역사교육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유적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의

만행과 독립운동 관련 영상, 자료, 증거물 등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게 꾸며졌다.

일제의 폭압과 독립운동 영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영상관람실과

관련 기록을 모아둔 자료실, 홍보관, 유치장, 고문틀, 사형도구, 그리고

손톱 뽑기, 물고문, 입관(立棺)에 가두기, 목 칼씌우기 등 고문장면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고 처절한 비명소리까지 들려주는 고문실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상황을 실감 있게 재구성해 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대문 역사관은 해마다 5만 명 가까운 일본 관광객을

포함해서 60여만 명이 방문하는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해왔다. 2001년 10월 15일에는 방한 중이던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방문해서 사형장 입구에 있는 순국선열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헌화분향

한 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인에게 고통을 준데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그처럼 의미있고 중요한 역사교육의 현장이 언제부터인지 슬며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

이혜훈 회장은 "소위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 27명에 대해서는 옥사

(獄舍)건물 2채를 모두 할애해서 약력과 행적, 어록, 사진, 풋프린트,

부조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정작 3·1운동에 대해서는 7줄짜리의

짧은 소개밖에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

백기완·김근태·고은 등 민주화 인사 한 사람에게 할애된 전시 공간

규모는 3·1운동 전체에 할애된 공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독립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는 본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성 감옥에 간단한

약력만 적어놓았다. 유관순 열사의 훈격은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으로

돼 있어서 '유관순 추모제'가 지방 단위의 행사로 전락해 버린 꼴이 됐다. ​

역사관 시설도 확 바뀌었다. 순국선열제단과 향로를 철거하고

'민족의 혼 그릇’이란 이름의 조형물을 세웠다. 고문장면을 보여주는

밀랍인형들을 제거하고 별 의미도 없는 영상실로 바꿔놓았다. 3개의

감방과 감방 통로 요소요소에는 민주화 운동 홍보물로 도배를 해놓았다.

그것뿐 아니다. 2010년부터는 매년 9월 말 3일 동안 서대문역사관

내외에서 좌파 인물들과 운동권 학생들이 참가하는‘서대문 독립민주

페스티발’이란 추모행사를 열어 운동권의 결속을 다짐한다.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역사교육장인 역사관은 2007년 10월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서울시장(박원순)과

구청장이 들어앉자 좌파 운동권의 교육장처럼 돼 버린 것이다. ​

이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 그곳을 찾던 우리 학생들은 물론 일본 관광객들에게 까지

깨우침을 주던 살아있는 역사 교육현장을 무슨 이유로 어떤 사람들이

운동권의 놀이마당으로 만들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먼저 있던 말짱한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운동권 중심의

시설물로 바꾸는데 들어간 예산은 어떤 절차와 경로를 거쳐

집행됐는지, 부정과 비리는 없었는지 철저히 파헤치고 따져야 한다.​

2008년부터 민선 玄동훈 서대문 구청장이 역사관의 전체적인

개‧보수 작업을 하겠다며 서울시와 문화재관리청에 로비를 하여

121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개편, 보수작업을 진행하던 중

뇌물수수혐의로 옷을 벗었던 일을 생각할 때 석연치 않고 수상쩍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본래 설립 취지를 고의적으로 훼손시키고

운동권의 터전처럼 변질시킨 일은 우리의 민족정신과 역사를 왜곡시킨

반민족적 행위이다. 이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밝혀내어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서대문역사관을 훼손 변질시킨 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