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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25전쟁 60년(판문점 공산주의자)<122>골초 남일의 착각

녹색열매 2010. 8. 31. 21:17


[6·25 전쟁 60년]
         판문점의 공산주의자들
         (122) 골초 남일의 착각

                
                 

[중앙일보 유광종] 나는 휴전회담에 3개월 조금 넘게 참석했다. 나는 그 뒤로 동부전선의 국군 1군단장으로 복귀해 다시 전선의 전투를 지휘했다. 지리산 토벌에 나서는 것도 그 뒤의 일이다. 내가 지리산으로 가서 작전을 펼칠 때 벌어졌던 일이다.

남일은 그의 일기에서 휴전회담 유엔 측 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을 골탕 먹인 일을 적고 있다. 중요한 내용을 두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협상을 벌여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기보다는 상대를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는 데 더 공을 들이는 게 남일, 나아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속셈이었던 모양이다.

1951년 12월 초에 적은 그의 일기에는 담배가 등장한다. 그는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회담 내내 발언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입에 담배를 무는 골초였다. 상대방인 유엔 수석대표 조이 제독 또한 그에 못지않은 줄담배였다. 남일은 전 회에서 소개한 내용처럼 공산 측 수석대표로 회담에 나서기 전 김일성에게서 상아로 만든 담배 파이프와 가죽 장화를 선물받았다.

가죽 장화와 담배 파이프를 받은 그는 김일성에게 감격했다는 감정을 적었다. 겉모습에서도 적군에게 꿀리지 말라는 배려였다는 식의 칭송을 늘어놓았다. 김일성이 그에게 줬다는 상아 담배 파이프가 화제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남일의 일기 내용이다. “(김일성이 자신에게 상아 담배 파이프를 준) 뜻깊은 사연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조이가 내 옆에 다가앉더니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미국인들은 파이프를 잘 쓰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담배에는 파이프가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 그러고서 그는 무슨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나에게 (자신의 담배를) 한 대 권하며 ‘피워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순간 담판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남일은 그 담배를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회담장에 몰려 있던 유엔 측 기자들이 조이가 건네준 담배를 자신이 피울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며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린 것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그는 일기에 “특히 녹음기와 촬영기를 들고 벌써 그 장면을 기록하려는 기자들의 행동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그의 일기는 계속 이어진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거만한 눈으로 바라보는 조이에게 아무런 주저도 없이 ‘어디 한 대 피워봅시다’라고 선선히 말을 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며 조이가 준 담배에서 여과봉(필터)을 뜯어버리고 천천히 파이프에 끼워 넣자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남일은 그 상황에서 묘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는 주위에서 그를 보는 유엔 측 관계자들의 시선을 ‘긴장과 야유’로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느긋하게 다음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담배연기를 천천히, 깊이 들이마셨다고 했다. 그다음은 “숨을 죽이고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조이가 교활한 눈가에 웃음기를 담고 물었다. ‘담배 맛이 어떠냐. 아마 귀측의 담배 맛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이것은 조이의 도발이었고, 이제껏 당한 창피를 만회하려는 심사였다”고 적었다.

다음 대목이 걸작이다. 남일은 조이의 물음에 “하여튼 통쾌하다”고 대답했다고 적었다. 그러자 조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남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보시오, 나야 당신네 나라 미국을 태우고 있지 않으냐”고 대답했다고 적었다.

남일은 자신이 ‘명쾌한 대답’을 내놓자 장내에는 폭소가 터졌다고 했다. 그가 관찰했다는 조이의 표정이다. “이렇게 되자 조이와 그 졸개들은 삽시에 얼굴색이 까맣게 죽고 아연해 하더니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사렸다”는 것이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서 “미국을 태웠다”고 자랑하며 우쭐거렸던 남일의 모습이 생생하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자리에서는 그게 유머였을 것이다. 그러나 휴전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한 뒤 우쭐거리는 모습은 뭔가 석연치 않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잔뜩 상대방을 골리려고 뭔가를 준비했다가 그를 풀어 놓은 뒤 자신을 자랑하는 모양새였다.

스스로 꾸민 보잘것없는 꾀에 만족하는 남일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조잡(粗雜)함을 떠올렸다. 조이가 건네줘서 남일이 피웠다는 담배는 ‘체스터필드’였다. 나도 휴전회담 당시 담배를 피워서 조이가 선호하며 늘 지니고 다녔던 그 담배를 잘 알고 있다. 당시의 미군들은 담배를 주변 사람들과 자주 나눠 피웠다. 이를 테면 ‘담배 인심’이 무척 후한 편이었다. 그런 기분에서 조이가 남일에게 담배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온 반응이 엉뚱했다.

설령 조이가 도발적인 남일의 발언에 잠시 놀랐다고 하더라도, 정말 꽁무니를 뺄 정도로 기가 눌렸을까. 휴전회담장에서 3개월여 동안 함께 호흡했던 조이 제독의 성품으로 볼 때 그것은 남일의 지나친 상상에 불과하다.

조이를 비롯한 유엔 측 대표들은 남일의 “미국을 태웠다”는 발언에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심리전으로 몰고 가려는 남일의 모습에서 두려움보다는 가련함을 더 느꼈을 것이다.

남일은 그날의 소감을 정리하면서 “나도 몰래 줄지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멀리 (김일성이 있는) 평양 하늘을 우러르니 밤하늘에 비낀 은하수가 유난히도 빛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돌이킬 수 없는 중증(重症)의 정신병에 해당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상태가 대개 그렇다. 그들은 늘 정상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백선엽 장군
정리 = 유 광종 기자

출처 : 호림(sohn4303) : 손 국현
글쓴이 : 호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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